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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개인회생 힘든 생활속에
    밝은세상으로 2019.01.27 10:03


    개인회생 경위서 힘든 생활속에

     

     

    저는 1958년 전남해남에 작은 농촌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제가 11살에 아버님께서는 5남매의 어린자식들을 어머님께 맡기시고 돌아가셨습니다참 어렵고 힘든 시기였지만 어머님께서는 저희 6남매를 많은 고생을 하시면서도 아무 탈 없이 키워 주셨습니다.





    개인회생 경위서 제출하기 전!




    80년도 초에 결혼을 하여 아들과 딸을 얻었습니다. 가진 것 없고 배운 게 없었기에 가난을 벗어나고자 우리가족은 서울이라는 낯선 곳으로 올라왔습니다서울은 우리가족을 쉽게 받아주지 않았습니다. 무슨 일이든 해야만 했습니다직장을 따라 여기 저기 옮겨 다니다 보니 어렵고 힘든 시간에 연속이었습니다. 결국 얼마기자 않아 애들은 할머니와 고모 손에 맡겨지고 우리 부부는 떨어져 몇 년을 보내야 했습니다가족이 다시 만나 살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열심히 일을 하였습니다. 드디어 조그만 연립 주택을 마련하게 됐습니다. 조금만 더 고생하자고 다짐하고 다짐했습니다.



    하지만 여지것 고생이 물거품이 되는 것은 한 순간이었습니다. 아는 분의 사기행각에 그 집으로 이사도 해보지 못했습니다. 못 배우고 무지한 제 자신이 싫었습니다. 세상을 살아오면서 가장 힘든 시기였습니다. 밝은 빛이 순식간에 암흑으로 변하고 처음으로 죽음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가정은 그때 풍비박산이 났고 1년여에 방황의 기간이 있었습니다. 그때 세상을 버려야 했습니다. 결국 혼자서 고향 해남 땅으로 내려와 형제 사촌의 도움으로 목포와 해남을 오가면서 장사를 하였으나 경기불황과 경험미숙으로 나도 모르는 사이에 빚이 조금 씩 조금씩 늘어났습니다그게 수렁으로 빠져드는 길이라는 걸 몰랐지만 그렇게 끝이 났습니다채무를 갚기 위해 일자리를 찾았으나 신용불량자라 받아주는 안정된 직장은 없었습니다.


    남을 위함이 아닌 개인회생 경위서


    이미 신용불량자가 되어 있는 나에게는 건설 일용직정도가 최고의 일자리였습니다파산신청에 앞서 채권자에게 통화를 하여 제가 취직을 하고 살아 갈수 있는 길을 열어주면 회생제도로 가려하였으나 현실에 법은 그렇게 할 수 없다 였습니다40대의 자신 있던 마음은 50대에 들어서자 몇 년 가지 않았습니다. 일용직과 노무직은 너무너무 힘이 들었습니다.



    하루하루가 고통속에서 결국

    개인회생 경위서 제출


    아시는 분의 도움으로 잠자리는 간신히 마련하였으나 제가 선택하는 길이 파산밖에 없다는 것이 마음 아픕니다저희 어리석은 과실로 인하여 손해를 끼친 채권자들에게 참으로 미한하고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인척을 통해들으니 아내가 몇 년 전부터 이혼을 생각하고 있답니다. 만나 본지도 너무 오래 되어서 이혼이라는 얘기에도 아무런 감정이 없습니다. 고생만 시켜서 너무 미안할 뿐입니다. 몇 년 전부터 병원에 다니는데 수면유도제를 계속 처방해 달라니까 내과 의사 선생님께서 정신과 상담을 권하십니다. 제 마음은 제가 큰 자물쇠로 잠궈 버렸는데 말입니다. 지금 가장 높은 낭 떨 어지위에 서 있습니다. 현재의 제에게는 이 채무를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벅찹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다시 시작 할 수 있는 꼭 한 번의 기회를 주신다면 다시는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사회에 봉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겠습니다선처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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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인회생 경위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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