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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개인회생 경위서 제출된 사연
    밝은세상으로 2019.01.25 11:48


    개인회생 경위서 제출된 사연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초등학교만 졸업 한 후 남의 집 식모살이를 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러던 1975년경 제 나이 22살 때 지금의 남편을 만났습니다. 당시 남편은 건설현장의 일용직 노동일을 하고 있었고 저는 남의 집 식당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얼마 후 아들 김재철을 임신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급하게 살집을 장만하고 혼인신고도 한 후 현재까지 결혼식도 못하고 어렵게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런 채무를 지게된 이유는 2001년경 아들이 목회의 뜻을 품고 무보수로 전도사 일을 시작하였습니다. 그래도 남편과 제가 열심히 벌어서 3식구 생계유지하는데는 크게 문제가 안되었는데 아들 김재철이 지금의 며느리을 임신시키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며느리 까지 저희가 데리고 살아야 했습니다. 그래도 아들 재철이가 돈을 벌어오면 괜찮았을텐데 이제 시작한 전도사 일을 그만둘 수 없다며 계속해서 전도사 일에 매진을 하였고 며느리는 아이를 임신했다는 이유로 일을 하려하지 않았습니다


    개인회생 경위서 실제 제출된 사연 입니다.


    그래도 알뜰히 생활하면 된다는 생각에 4식구가 생활을 했는데 2002년도에 며느리가 손자를 낳으면서 저와 남편이 부양할 가족이 한 명 더 늘어났습니다. 어른은 있으면 있는대로 살고 없으면 없는대로 살면 되지만 어린아이는 분유 값과 귀저기 값이 들기 때문에 남편과 제가 버는 수익으로는 도저히 생계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남편명의의 신용카드를 만들어서 생활비에 사용 하였는데 지출은 계속해서 늘어나는데 소득이 늘지 않아 제 명의의 신용카드까지 만들어서 돌려막기를 하면서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런데도 아들은 목회에만 열중하였고 며느리는 아이를 돌봐야 했기에 돈을 벌 수는 없었습니다




    어려운 생활속에 있었던 개인회생 경위서


    거기에 2003년도에 며느리가 또 다시 임신을 하게 되었고 2004년도에는 둘째 손주까지 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생활비는 예전보다 3배 가까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남편과 제 명의로 사용하던 카드가 한도 초과가 되어 며느리와 아들 명의로도 신용카드를 만들어서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그때까지는 아들이 목사만 되면 모든 빚을 갚을 수 있을 것이란 희망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2005년경 카드가 연체되면서 모든 것이 한 순간에 정지 되어 각종 카드사로부터 빚 독촉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러다 2005년경 사돈어른께서 아이들 분가하라며 300만원을 주셔서 아이들은 분가를 하였고 저희 부부는 여기저기 친척네 집을 맴돌다 20076월 지금살고 있는 천호동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개인회생 경위서 솔직함이 통한다.


    판사님 현재 남편과 저는 조그마한 트럭을 가지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폐휴지나 고물 등을 주워서 고물상에 파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루종일 돌아다녀도 6만 원정도를 벌게 되지만 여기서 주유비 3만원 제하고 나면 하루에 3만 원정도의 소득밖에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5,000만 원가량되는 빚을 도저히 갚을 방법이 없어서 파산을 신청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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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서초구 서초동 1705 | 법무사 김동현 02-535-7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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