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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세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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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을 갚고 싶으나 현재는 한쪽 눈이 실명이 된 상태라서 어쩔 수 없이 파산을 저는 올해 62세인 000라고 합니다. 지나간 세월을 되돌아 보고 싶지는 않지만 다시금 이야기해야 한다고 하여 잠시 떠올려 봅니다. 저는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 중학교까지 졸업을 하였습니다. 중학교 졸업 후 돈이 되는 일이라면 닥치는대로 일을 했고 그러던 1984년경에 택시운전면허를 따서 택시운전 일을 하였습니다. 관 련 글[밝은세상으로] - 개인회생 경위서 내뜻대로[밝은세상으로] - 개인회생 힘든 생활속에[밝은세상으로] - 개인회생 경위서 다시 태어나다 그러나 1985년경 집사람과 성격차이로 이혼을 하게 되었고 저 혼자서 딸아이를 키우며 살았습니다. 그러던 1991년도에는 대출을 끼고 개인택시를 인수하였습니다. 개인택시를 운전하면서 별탈없이 생활을 하였으나 1993년경부터 택시를 살 때 대출받았던 대출..
개인회생 인생의 어두운 터널속에서 1970년도에 3남매의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여유있는 환경은 아니었지만 부족하지도 않았던 저의어린 시절은 막내라는 이유로 아버지, 어머니께 많은 귀여움을 받고 자랄 수 있었습니다.농사를 가업으로 물려 받으신 아버지께서는 항상 부지런히 일을 하셨고 어머니 역시 아버지의 일을 도와드리며 가사일을 돌보곤 하셨습니다 제가 고등학교 때 아버지께서 돌아 가시고 미망인이 되신 저희 어머니는 저희 3남매를 키우시며 안해본 일이 없을 정도로 열심히 사셨습니다. 관 련 글[밝은세상으로] - 개인회생 힘든 생활속에[밝은세상으로] - 개인회생 경위서 진실성 [밝은세상으로] - 난 이렇게 개인파산을 상업고등학교에 진학을 한 저는 취업을 목표로 하였고 대학 진학은 꿈도 꿀 수 없는 상황에서 비록 막내이긴 하지만 집안 살림에 보탬..
개인회생 선처해 주시길 두손모아 간곡히 부탁 드립니다. 채무증대 경위서 저는 강원도 슬하의 2남2녀중 막내로 태어난 000입니다. 어린시절 아버님께서는 건축현장의 노동일을하시며 저희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셨고, 어머니께서는 그 시절에 사방공사라는 일을 하셨습니다. 넉넉한 집안형편은 아니었지만 화목한 분위기 속에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1983년 2월에 소양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지인의 소개로 의정부에 있는 (주)0000에 입사를 하여 열심히 근무를 하였습니다.저는 이곳에서 70만원정도의 급여를 받으며 성실히 근무하였고 2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며 군입대로 인하여 정들었던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그후 군생활을 무사히 마치고 다시 군에가기전에 근무하던 (주)000에 입사하여 근무를 하는데 아버님께서 연락이 온 것이었습니다. 갑자기 집으로 내려오라는 소식을 접하게..
개인파산 하게된 동기가! 개인파산 하게된 동기가!개인파산 신청인 0 0 0는 파산신청을 하게된 동기를 다음과 같이 작성 제출하오니 추후 사실 진술서에 관하여 거짓이 발생 할 경우 어떠한 처벌도 달게 받겠습니다. 아무것도 모른 채 0 0 0 이라는 사람을 알게 되었고 그 사람과 어쩔 수 어절 수 없는 동거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동거를 한지 첫아이를 낳게 되었고 둘째를 낳고부터 제 인생은 헤어나질 않았습니다. 남편 이000은 돈을 벌지 않았습니다. 첫아이를 낳고 나서도 남편은 일을 하질 않았고 순전히 제가 벌어오는 돈으로 생활을 했습니다. 일이라도 안하면 돈을 쓰지도 말아야 하는데 남편은 당시 노름에 빠져 있었고 돈이 없어 저에게 돈을 요구 하면 어절수 없이 빚을 내서라도 돈을 줘야만 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남편의 폭력을 감당..
방법이 없어 많은 고민을 하다 개인회생 신청에 이르게 신청인은 1900년도에 서울에서 5남매중 셋째로 태어났습니다. 당시 신청인의 가정은 경찰공무원이었던 아버지와 어머니 밑에서 예의바르고, 청렴함을 가훈으로 바르게 자랄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유복하지는 않았지만 부족함이 없이 살았습니다. 그렇게 서울에서 고등학교까지 졸업 후 바로 취업전선에 뛰어들었습니다. 직장생활을 하다가 경기 부천에 살고 계시던 000께서 좋은 사람이 있어 선을 보라 하여 선을 보았고 서로 마음이 맞아 결혼을 하였습니다. 후에 1남1녀를 두었습니다. 그렇게 마냥 좋을 것만 같았던 신청인의 삶은, 2005년 당시 배우자가 다니던 직장이 재정이 어려워져서 부득하게 퇴직을 하면서 조금씩 기울게 되었습니다. 당시에는 너무나 막막 하였지만, 퇴직시 받은 퇴직금과 모아둔 약간의 돈으로 사업을 하여..
어려운 가정환경 탓에 중학교만 졸업 어려운 가정환경 탓에 중학교만 졸업 한 후 산업전선에 뛰어 들어 일을 했습니다. 그러던 23살 무렵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하여 슬하에 아들 둘을 낳고 살아왔습니다. 그러던 1992년경 남편과 같이 청바지 공장을 운영했습니다. 그러나 청바지 공장을 차린지 5개월 만에 남편이 오토바이 사고를 당해 6개월간 병원에 입원하는 바람에 공장을 접고 남편의 병간호를 해야했습니다. 개인파산 선택의 경우! 6개월 후 퇴원을 했으나 남편의 몸이 정상이 아니라 일을 못했고 제가 밖에 나가 돈을 벌어 겨우 저희 4식구 생계를 유지해야 했습니다. 그러던 1996년경 나라에서 사업자금 대출을 지원해 준다고 하여 남편과 신용보증기금에 가서 대출을 받아 또 다시 청바지 공장을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관 련 글[밝은세상으로] - 올가..
올가미에서 벗어나서 아이들과 같이 살 수 있는 날만 손꼽아 기다리며 살고 있습니다. 고교졸업 후 가락동내에 있는 청과물 시장에서 경리 일을 하면서 열심히 생활했습니다. 그러던 1994년경 뜻하지 않은 임신이 되어 지금의 남편 김진중과 결혼하였고 결혼 후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생활하였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지경까지 오게된 이유는 2000년경 남편이 유통업을 하면 적은 자본으로 큰돈을 벌수 있다며 성남 시청 앞에 조그마한 가게를 얻어서 유통회사를 차렸습니다. 관 련 글[밝은세상으로] - 진심으로 부끄럽고 참회하는 [밝은세상으로] - 이제와 생각해보니 저의 어리석고 [밝은세상으로] - 개인회생 경위서 참을수 없는 고통 그러나 처음 시작할 당시부터 많은 사업자금이 필요했고 이 과정에서 남편은 자기 명의의 대출과 제 명의로 대출을 받아서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경험도 없이 시작한 사업이다보..
정말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이글을 쓰는 제 자신이 부끄럽고 정말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강원도 삼척에서 농부의 딸로 태어나 동생들이 많다보니 공부도 많이 못했습니다. 초등학교 졸업 후 중학교에 입학을 하였으나 몇 개월 다니지 못하고 학교를 그만둬야 했습니다. 그 후 서울이란 낯선 곳으로 상경하여 영등포에 있는 봉제공장에 취직하였습니다. 거기서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어서 월급의 대부분을 고향에 계시는 부모님께 보내드리곤 했습니다. 그리고 동생들의 뒷바라지까지 하며 혼기도 놓치고 결혼도 못했지만 불평불만 없이 착실히 살아왔다고 자부합니다. 관 련 글[밝은세상으로] - 개인회생 힘든 생활속에[밝은세상으로] - 제발 숨쉬고 살고 싶습니다.[밝은세상으로] - 이제와 생각해보니 저의 어리 그런데 제가 이지경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