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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사정을 헤아려 주시어 선처해 주시길


저는 서울시 마포구에서 1974 장남으로 태어난 000입니다. 부모님 두분 모두 00에서 초등학교도 졸업하시지 못하시고 넉넉하지 못한 집안형편으로 서울로 상경하셔서 아버지는 막노동등을하시다가 시장에서 노점상을 하시며 저희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셨고 어머니께서는 가사일을 하셨습니다. 책임감 강하신 아버지로 인해 부유하진 않지만 화목하게 보낼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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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1995년 000대를 졸업한 후 군에 입대했습니다. 제대 후 학원을 다니며 전자통신자격증 취득을 하고 작은 노래방기기 사무실에 취직하였고 K 등 통신장비회사에서 근무하였습니다. 그 후 공무원 시험준비를 한다고 퇴사하여 몇 년간 공부에만 매달렸지만 결국 실패하고 나이는 어느덧 30중반이 넘어간 제자신을 보았습니다 경력의 단절기간이 너무길고 나이도 새로 취직하기엔 너무 많아졋습니다.

 

재취업을 위해 세무회계자격증을 따고 작은회사에 취업했지만 또다시 도망치고 말았습니다 그후 주식인터넷카페를 접하고 주식으로 생활비를 벌수있다는 환상에 사로잡혔습니다 결국 또 실패하였습니다.

그리고 파견직 운전직을 하였으며 저는 또 파견종료라는 명목으로 권고사직을 당하였습니다.

새로 자리를 알아봤지만 쉽지않았습니다. 그렇게 실패했던 주식을 다시 생활비를 벌수있겠지 하는 헛된 욕심에 국민카드 신한카드 삼성카드 등에서 이제는 되겠지 생각하며 계속해서 카드론을 늘려갔습니다. 결국엔 현금서비스까지 하며 손실을 메꿔나갔습니다. 결국엔 제가 감당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40넘은 나이에 결혼도 못하고 여태까지 내가 왜 살아왔는지 하는 생각에 자살도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노점상을 하고 계신 아버지와 척추치료를 받고 계신어머니를 생각하니 빚을 남기고 가는건 장남의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더 이상은 갈곳이 없다고 생각하고 물류직 노동일 공장일을 알아보았지만 저체중인 제몸으론 그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결국 운전직일자리를 다시 얻게 되었습니다. 저에겐 부족한점이 너무도 많았습니다. 남들앞에 서는게 무섭고 두려워 회사에서 말을 할때도 얼굴부터 빨개지곤 했습니다. 사회에 적응하기 힘들어 계속 도피하며 도망만다닌게 저의 인생같습니다. 못난아들 때문에 고생만 하시는 노부모님에게 효도는 못할지언정 빚만은 드리고 싶지않습니다.

 

하루에도 몇 번이나 걸려오는 채권자들의 극심한 독촉 전화 집으로 오는 고지서에 불안과 고통 속에 하루하루를 보내 던 중 우연히 개인회생제도를 알게 되었습니다. 저에게 돈을 빌려주신 채권자들에게는 죄송한 심경 한이 없지만, 부디 저의 사정을 헤아려 주시어 선처해 주시길 두 손 모아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