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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세상으로

올가미에서 벗어나서 아이들과 같이 살 수 있는 날만 손꼽아 기다리며 살고 있습니다.


고교졸업 후 가락동내에 있는 청과물 시장에서 경리 일을 하면서 열심히 생활했습니다. 그러던 1994년경 뜻하지 않은 임신이 되어 지금의 남편 김진중과 결혼하였고 결혼 후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생활하였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지경까지 오게된 이유는 2000년경 남편이 유통업을 하면 적은 자본으로 큰돈을 벌수 있다며 성남 시청 앞에 조그마한 가게를 얻어서 유통회사를 차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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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처음 시작할 당시부터 많은 사업자금이 필요했고 이 과정에서 남편은 자기 명의의 대출과 제 명의로 대출을 받아서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경험도 없이 시작한 사업이다보니 매달 적자만 보게 되었고 남편은 곧 괜찮아 질것이라며 저를 안심시켰으나 남편의 사업은 계속해서 적자만 볼뿐 생활비를 갔다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아이들 반찬값이라도 벌어야 겠다는 생각에 2000년경부터 화재에 보험설계사로 취업하여 보험영업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저 또한 처음 접하는 영업이다보니 매달 기본급 수준의 월급만 받을 뿐 생활에 보탬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저라도 벌어야 한다는 생각에 계속해서 보험 일을 하였으나 2002년경 저희 팀이 계약저조로 공중분해 되었고 저 또한 영업실적이 부진하여 그시기에 보험일을 관두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남편도 더 이상 버틸 자신이 없다며 유통회사를 정리하였습니다.

 

그 후 남편은 중앙일보 분당지국에서 취업하여 일을 했으나 얼마 일하지 못하고 일용직 노동일을 전전했고 저도 빚을 빨리 갚아야 한다는 생각에 아모래 화장품 방문판매 일을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저 또한 회사가 성남에서 서울로 이전을 한다고 하여 얼마 다니지 못하고 그만 두게 되었고 그 후 여러 회사에 이력서를 써보았으나 신용이 나빠져서 취업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그때부터 남의 집 파출부 일이나 남의 집 식당에서 설거지 와 허드렛 일을 하였으나 2007년도에는 주민번호도 말소가 되어 아버님네 집에서 신세를 지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20105월 부터는 아버님네 집에 사는 것을 알고 아버님네 집을 경매 넣는다고 하여 20106월 부터는 저와 남편만 아는 언니네 집에서 신세를 지며 언니네 가게 일을 돕고 있습니다.

 

현재는 가게 사장님께서 아들명의의 지하 원룸 전셋집이 있는데 아들이 직장문제로 갑자기 지방으로 가게 되어 집이 비게 되었는데 계약기간이 7개월 정도 남았는데 그 기간 동안에는 그 집을 뺄 수 없으니 저희 부부에게 거기서 살라고 하여 지금은 경기도 고양시 지하 원룸에 무상으로 살고 있습니다





이렇게 많은 배려를 해주셔서 열심히 일하고 있으나 월 80만원 안팍의 월급을 받고 있습니다. 이 돈으로는 생활비 하고 한 달에 한 두 번씩 시부모님을 찾아 뵙고 아이들 양육비로 드리고 나면 남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도 열심히 일하면 언젠가는 좋은 일이 있겠지 하며 열심 살았는데 가게 사장님이 개인파산이라는 제도가 있으니 상담 한 번 받아보라고 하여 남편과 상의 끝에 개인파산을 신청하게 되었습니다. 판사님 지금은 비록 빚 때문에 저희 가족이 떨어져 살고 있지만 하루 빨리 빚이라는 올가미에서 벗어나서 아이들과 같이 살 수 있는 날만 손꼽아 기다리며 살고 있습니다. 부디 그런 날이 올수 있도록 판사님의 관대한 선처를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