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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세상으로

정말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이글을 쓰는 제 자신이 부끄럽고 정말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강원도 삼척에서 농부의 딸로 태어나 동생들이 많다보니 공부도 많이 못했습니다. 초등학교 졸업 후 중학교에 입학을 하였으나 몇 개월 다니지 못하고 학교를 그만둬야 했습니다. 그 후 서울이란 낯선 곳으로 상경하여 영등포에 있는 봉제공장에 취직하였습니다. 거기서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어서 월급의 대부분을 고향에 계시는 부모님께 보내드리곤 했습니다. 그리고 동생들의 뒷바라지까지 하며 혼기도 놓치고 결혼도 못했지만 불평불만 없이 착실히 살아왔다고 자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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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제가 이지경에 오게된 이유는 2002년경으로 기억하는데 사회 친구인 000이라는 친구가 찜질방을 동업으로 운영하자고 하였습니다. 저는 그때까지도 봉제일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기에 친구인 신강숙만 믿고 무작정 찜질방 사업에 뛰어 들었습니다. 초기 자금은 대략 12천만 원정도 들었고 둘이 반반 부담하여 6천만 원 가량의 초기 사업자금이 들어갔습니다. 사업 시작 후부터 장사가 잘 됐던 적이 한 번도 없었고 매일매일 적자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직원들 월급과 찜질방 월세 등 한 달에 몇 천만 원씩 적자를 보게 되었고 친구와 상의 끝에 광고도 많이 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돌리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했고 어쩔 수 없이 친구와 제 명의로 은행에서 대출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대출금의 액수는 날이 갈수록 늘어만 났고 찜질방 운영은 좀처럼 회복세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결국 찜질방 운영한지 16개월 만에 찜질방을 접게 되었습니다접은 후 친구가 다시 한 번 사업을 해서 그 동안의 빚을 만회해 보자고 하였으나 그 친구는 얼마 후 위암이란 무서운 병으로 저세상으로 떠나 갔습니다.

 




어쩔 수 없이 마흔 셋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 다시 봉제공장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이마져도 맘 놓고 일할 수가 없었습니다. 카드사와 은행에서 제가 다니는 봉제공장으로 찾아와 빚 독촉을 해대는 바람에 몇 개월씩 맘 놓고 일을 할 수 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몇 개월씩 근무하고 퇴사하기를 반복하면서 빚 독촉 받으며 하루하루 지옥 같은 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던 20112월 경 사회에서 알게된 언니가 시골에서 좋은 공기 마시며 지내면 건강도 좋아질 것이고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도 좋아 질 것이라고 해서 20112월 경 경상북도 영주로 내려와서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일할 자리도 별로 없어서 남의 집에서 농사일이 있으면 농사일 조금씩 거들어 주고 인견 공장에 일거리가 있으면 며칠씩 가서 일을 도와주고 일당으로 5만원을 받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해도 한 달에 60만 원 안팍의 소득 밖에 없는데 이 소득으로 1억 원이 넘는 돈을 도저히 갚을 방법이 없어서 포기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언니가 개인파산이라는 방법이 있으니 상담 한 번 받아보라고 하여 상담을 받았습니다. 상담을 받고 나니 왠지모를 기대감과 희망을 갖게 되었고 제게도 면책이라는 것이 가능할까 라는 의문도 갖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면책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정중히 신청을 해봅니다.